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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세상의 별별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70년대 대한민국 암흑기를 주름잡은 '마약왕'들

by 별통 2018. 10. 24.

우리가 몰랐던 70년대 대한민국 암흑기를 주름잡은 '마약왕'들


불과 30-40년전, 그러니까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믿기진 않지만 우리나라에 ‘마약’이 성행하고 있었고 마약을 몰래 제조하고 판매하며 일확천금을 벌었던, 일명 ‘마약왕’으로 불리며 그 시대를 뒤흔들었던 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런 이야기가 우리 현대사 속에 남아있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1960년대, 국내 마약 밀조 활성화된 시기

이야기의 시작은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8년 정모씨가 국내에 최초로 히로뽕 제조 기술을 일본에서 도입한 사실이 알려집니다. 그 해 4월, 국내에서 최초로 검거된 히로뽕 밀조업자들이 정모씨로부터 히로뽕 제조기술을 배우고, 원료를 지원받았다는 자백을 받은 검찰은 정모씨를 수배대상으로 지목합니다.


행방이 묘연했던 정모씨가 검거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모씨의 검거를 계기로 그동안 일본인들로부터 원료와 자금을 지원받아 히로뽕을 밀조, 관광객을 가장한 밀수꾼을 동원해 일본에 밀반출한 사실이 밝혀집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인한 절망으로 인해 히로뽕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고 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원래는 군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히로뽕의 암매가 늘어나면서, 일본 정부는 히로뽕에 대한 처벌법규를 강화하게 됩니다. 그 탓에 일본에서의 밀조가 힘들어지면서 한국을 밀조기지로 삼아 제조, 밀수를 통해 다시 일본으로 들여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Q : '히로뽕'은 어떤 마약인가요?

A : 흔히 '히로뽕'이라 불리는 이 마약은 필로폰(Philopon)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로뽕'은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으로 과거 '히로뽕(ヒロポン)'이란 상품명으로 판매한 각성제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일반명사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필로폰은 마약의 일종인 향정신성 물질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을 칭하는 것으로 아편, 대마초에 이어 '제3의 마약'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복용할 경우, 효과가 매우 빠르게 나타나며 잠이 오지 않고 수치심이 사라지며 신체 일부분의 근육수축으로 인한 성적쾌감이 증가하거나 과도한 흥분과 자신감이 생겨 공격적·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메스암페타인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민간에 널리 확산되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약왕'들이 활개쳤던 70-80년대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마약의 실태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1970년 8월, 해외로부터 마약의 원료인 스리나인(999)을 밀수해 국내에서 헤로인으로 제조하여 유통하려던 마약범일당 서모씨 등 17명이 검거되었습니다. 이들이 시중에 팔려던 마약은 당시의 시가로 10억원에 해당하는 양으로, 무려 168만명을 중독시킬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사상 최대규모의 마약밀조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72년 6월에는 중국에서 헤로인 원료를 들여와 시가 1억원어치의 헤로인 분말 등을 밀조하여 부산, 대전, 대구 및 경기도 일대에 마약을 밀매한 혐의로 대규모 마약밀조단 일당 11명을 검찰이 긴급체포하기도 했습니다.


마약에 대한 범죄를 수사하고, 범죄자를 체포해야 할 직위에 있던 마약감시반들이, 오히려 범죄자들과 내통하며 뇌물을 받아 범죄를 비호해주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1980년 3월에는 히로뽕 밀조범 이모씨의 범죄를 묵인하고, 배후에서 비호해 왔다는 혐의로 보사부 마약과감시계 소속 감시계장 김모씨가 검거되어 조사를 받던 중 수갑을 찬 채 도망간 사건도 있었습니다. 김모씨가 보사부 마약과감시계 소속으로 부산지역 마약단속반장으로 파견되어 근무하면서 이모씨의 마약 밀조, 밀매 사실을 알면서도 체포하지 않고 거액의 뇌물을 받아 챙기며 범죄사실을 방조, 비호해왔다는 것이었죠. 이 사건처럼 마약밀조조직과 부패된 일부 수사요원들이 유착된 경우도 있었다더군요.


* 보사부 : 보사부는 보건사회부(保健社會部)의 줄임말로 1994년 보건복지부로 개편되기 전까지 의무·방역·보건·위생·약무·구호·원호·부녀 문제와 노동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었습니다.





마약범들의 밀조는 대개 야산에 설치한 비밀공장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배편 등을 통해 해외 원료공급책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비밀공장에서 밀조, 대부분 국외로 밀반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밀조공장이 인적이 드문 산속에 위치했던 까닭은 필로폰 등 마약을 제조할 때 나는 악취와 단속으로부터 은폐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히로뽕만 해도 kg당 2억에 거래되곤 했는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여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거의 10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하더군요.


1980년 6월에는 대규모 히로뽕 밀조·밀매 조직이 적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밀조, 밀매한 히로뽕은 당시 시가로 3백억 원어치라고 하더군요. 또 이들을 검찰이 검거하며 압수한 밀매하다 남은 히로뽕만 해도 20kg에 달하는 양. 현재의 가치로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이었죠.


이 히로뽕 밀조단의 두목 한모씨는 부산에 7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2천만원짜리 외제승용차를 타고다니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만큼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사업이었던 마약 밀조를 통해 이루어진 밀매는 주로 그 대상이 일본 등 해외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품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마약 밀조·밀매는 불법으로, 마약밀조자는 조직폭력배와 연관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마약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한민국

1980년대 후반에는 정부의 마약류 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다행히 마약과 관련된 범죄가 크게 감소하게 됩니다.



사실 정부차원에서 마약류를 단속하기 시작한 것은 1946년 미군정법령 제119호 마약단속규정에 의거해 보건후생부(현 보건복지부) 약무국이 감시업무를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마약범죄와 관련된 규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왔지만 본격적인 마약류 관리가 시작된 것은 1965년에 '메사돈 파동'이라는 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 메사돈 파동은 메사돈을 해열제, 비타민제에 혼합하여 주사약으로 시판함으로써 당시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했던 사건으로, 마약중독자들은 이 약을 자주 남용했고, 마약과 관련없던 사람조차도 마약중독자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메사돈 파동으로 인해 1965년에 마약환자가 3,400여명으로 급증했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했던 메사돈 파동으로 서울지검 등에 마약전담반이 설치·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약류 남용이 확산되었고, 1989년 2월 보건복지부의 마약감시반을 검찰로 이관해 대검찰청 강력부에 마약과를 신설, 12개 본청과 3개 지청에 마약수사반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으로 개편, 강력한 단속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국내에서 마약류 밀조와 유통이 크게 감소했지만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본드, 신나 등이 남용되는 등 여전히 마약류 사용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90년대에 들면서 중국으로부터 생아편이 밀반입되기도 했으며, 국내에서 도주한 필로폰 제조자들은 중국에 밀조 거점을 확보하고 국내로 유통시키기도 했습니다. 해외 유학생들과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엑스터시의 사용이 크게 증가되기도 했습니다.


마약류 밀반입 사례가 급증함에 따라 정부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1988년 6월 김포공항내 마약수사분실 설치, 1992년 김해국제공항 및 부산항만에, 95년에는 인천항만에 마약수사분실을 설치합니다. 1995년에는 마약전문수사인력을 대폭 증강하고, 1996년 12월에는 강력부가 설치된 6개 지검에 '마약류사범 검찰·세관 합동수사반'을 편성하는 등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 단속에 힘을 더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마약청정국이라 불릴 정도로 마약과 관련된 범죄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가끔 일부 연예인들이 마약을 투약했다는 혐의로 입건됐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마약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과거에 비하면 극히 낮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마약류로부터 안전한 국가로 인식되어 온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강력한 단속노력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찰 뿐만 아니라, 경찰, 관세청,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마약류 정보 제공 등이 함께 아우러져 현재는 마약청정국이라 불릴 만큼의 좋은 결과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과 3-4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 마약이 성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는 않습니다. 또한, 일확천금 노리고 마약을 밀조하고 몰래 판매하여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인 '마약왕'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